빈처(貧妻)--1
저자 은희경
평범하기 짝이없는 한국의 셀러리맨 아내의 일상을 눈앞에서 보는 듯, 손에 잡힐 듯 섬세하고 리얼하게 묘사한 단편 소설 은희경의 '빈처'. 우리말로 굳이 바꾸자면 '가난한 남자의 마누라'.
이 소설은 'Poor Man's Wife' 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아시아 많은 나라에서도 출간되었다.
주부라면 이 소설을 한 번은 읽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속 인물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빈처, 작가 은희경, 1996년 작. '타인에게 말걸기'란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
PS: 노트북 필사
나는 그녀가 일기를 쓴다는 사실을 몰랐다. 뭘 쓴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자기반성이나 자의식 같은 것이 일기를 쓰게 하는 나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학생 때 무슨 글을 써 봤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내게 쓴 연애편지 몇 장도 그저 그런 여자스러운 감상을 담고 있을 뿐 글재주 같은 건 없었다.
그날 나는 낮 시간에 집에 있었다. 간밤에 초상집에 갔다가 새벽에 들어와서 열두 시가 넘도록 늘어지게 잤던 것이다. 자고 일어나 보니 집에는 아무도없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에라도 간 모양이었다. 물을 마시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키던 나는 화장대 위에 웬 노트가 놓여 있는 걸 보았다. 당연히 가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일기장이었다.
'6월 17일
나는 독신이다. 직장에 다니는데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 시 정까지 근무한다.--여기서 직장이란 자신의 주부생활을 말한다--나머지 시간은 자유이다.
이 시간에 난 읽고 쓰고 음악을 듣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외출은 안되지만.'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내 마누라가 독신은 웬 말이며 집에서 애 둘을 키우는 여자가 직장이라니? 다른 사람 노트인가?
허나 다른 사람 일기장이 그녀의 화장대 위에 놓여 있을 리가 없다. 글씨를 봐도 그녀가 틀림없다. 이응을 크게 쓰는 것이며 비읍을 둥글게 말아 쓰는 것이.
'직장 일 외의 시간에 난 애인을 만날 수도 있다. 스테디한 애인이 없기 때문에 또 열애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같이 애인을 만나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이다. 일주일 내내 한번도 못 만나는 적도 있다. 그런 때 나는 생각한다. 이십대에도 애인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뭘. 그러면 쓸쓸함이 조금 줄어드는 것도 같다.'
처음엔 웬 애인인가 싶어 의아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알아챘다. 그녀가 애인이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나라는 것을. 물론 그녀는 그것을 애틋한 의미로 쓴 것은 아니다. 내가 밖으로 도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잘 만날 수 없다는 뜻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녀 말이 맞다. 남편이긴 하지만 그녀 자신이 거칠게 표현한 대로 '스테디한' 관계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집에 안 들어오는 날도 종종 있다.
자정이나 새벽에 들어오는 게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그런 일과가 피곤한 것도 모른다. 언젠가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인생에서 두가지 일밖에 하지 않는데, 하나는 술 마시는 일이고 하나는 술 깨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럭저럭 참아 왔다. 내가 가정적이지 못한 것이 불만이긴 하겠지만 그것이 그녀의 인생에 결정적으로 심각한 그늘을 드리운다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물론 신혼 때는 바가지를 좀 긁었다. 이혼을 합네 마네 투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기 바빠서 나한테 매달릴 여유가 없다. 작년인가부터는, 난 당신 포기했어, 라고 스스로 공언하기까지 했다. 이웃 아줌마들하고 물건 싸게 산다고 마을버스 타고 연금매장 같은 데에 다니는 일이 재미도 붙은 모양이던데.....
그런데 포기했다고 하는 게 이런 거 였나? 자신을 과부나 독신으로 여기고 사는 거? 나는 입맛이 썼다.
'나의 직장 일이란 아이 둘을 돌보고 한 집안의 살림을꾸려 가는 일이다. 아빠 없는 어린애는 생겨날 수 없으므로 그 아이들은 물론 아빠가 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아빠와는 같이 살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한다. 결혼도 안 했으면서 마치 내 아이같은 느낌이다. 그 아이들을 사랑한 나머지 아빠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고 싶어서 고통스러울때도 있다. 때로 아빠를 찾는 그 애들에게 '아빠는 너희와 함께 계시지 못하단다'는 말이 불행한 느낌을 줄까 봐 조바심 난다. 하지만 세상살이에 이런 어려움은 얼마든지 있으니(내게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이런 직업적 고충을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애인이 오지 않는 날 애타게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지 않은들 그게 무슨 큰일이랴. 남편이라면 내게 오지않는 것이 상처를 주겠지만 애인이니 조금의 쓸쓸함만을 남길 따름이다. 신통하게도 아주 변심하여 영원히
안 와 버릴 애인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제기랄, 글 솜씨는 투박했지만 나는 그녀가 하려는 말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러니까, 불행한 것이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는데 밖에서 문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아이들을 걸리고 업고 들어왔다. 손에는 검정 비닐이 여러 개 들려 있다.
"언제 일어났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정답다. 나에게 주려고 샀을 주스 병 주둥이가 검은 비닐봉투 밖으로 비죽이 나와 있다. 그것이 어쩐지
무거워 보인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엉거주춤 비닐봉투를 받아 든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임을 스스로 깨달으며.
그녀에게 어젯밤 초상집에서 만난 친구들 얘기를 꺼냈다. 고등학교 동창의 아버지 상이었는데 친구들이 꽤 모였다. 그녀도 거의 아는 친구였다. 결혼하기 전 내 친구들은 생일이다 뭐다 하면서 애인을 데리고 배 밭에도 가고 북한산의 두부집에도 곧잘 다니곤 했다. 언젠가 초파일에는 화계사에 놀러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이 "야, 니가 집이 제일 멀구나" 라고 나를 놀리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회계사 바로 앞 동네에 살았는데 그녀의 집이 잠실어었던 것이다. 그들이 놀리는 대로 과연 나는 잠실에 그녀를 데려다 주고 집까지 되돌아오는 데에 차 타는 시간만 세 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친구들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다들 잘 있어요? 동구 씨는 결혼 했대요? 민석씨네는 이제 아기가 있겠네?"
내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며 그녀는 목소리가 밝다. 자기의 처녀 적 생각이 나는 거겠지. 나는 결혼한 뒤로는 친구들 만나는 자리에 그녀를 데리고 가 본 적이 없다. 우리끼리 마시는 게 훨씬 편했다. 집에서 듣는 것만도 지겨운데 밖에서까지 그만 마시라는 잔소리 들어 가며 술맛을 축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또 카페 같은 데에서 아가씨와 몇 마디 주고받는 게 아무 일도 아니련만 그녀가 보면 신경을 쓸 게 뻔하다. 내 속을 떠 보려고 귀찮은 시비를 걸어올지도 모른다. 달리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꾸 이렇게 변명 비슷한 말을 늘어놓다 보니 왠지 아내를 집 안에 팽개쳐 두고 혼자 나가 재미 본 기분이다. 오늘따라 왜이리 마음에 걸리는 게 많은지, 망할 놈의 일기장. 사실은 어젯밤에도 나는 기분이 안 좋았다.
언제부터인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도 불알친구라는 다정함이 없다.학교 다니던 때 등굣길이며 선생님이며 철봉이며 에
대해 다퉈 가며 기억을 더듬을 때까지는 좋다. 그런데 각자의 사는 이야기로 들어서면 좀 각박해진다. 은근한 과시와 견제, 무력감, 그런 것들이 나타난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특히 두 친구가 거들 먹거렸다. 하나는 아버지가 물려준 못나 빠진 야산이 돌산이라 떼부자가 되었다. 또 하나는 세무사 사무실에서 요령만 는 친구인데 이번에 여차저차해서 세 번째
아파트를 샀다고 한다.
나 같은 월급쟁이 친구들은 애써 웃으며 들으려 한다. 허나 얼굴 근육이 유연하지 않다. 사촌이 논을 사서가 아니라 거들먹거리는 폼이 아니꼬워서이다. 쟤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못하고 늘 선생님한테 야단이나 맞던 애들이다. 대학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한 녀석들이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대학물이나 먹은 우리 앞에서 더욱 돈 자랑을 하는 것이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위축감이 든다.
내가 한 달 내내 스트레스 받아 가며 버는 돈의 열배를 쟤들은 부동산 같은 걸로 앉아서 번다.
다 못난 소리다. 사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고 모범생이었다는 게 무슨 내세울 일이나 되는가.
제도 교육의 커리큘럼이 사람을 구별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우열을 판단하는 선생들의 평가 기준이 꼭 공정했던 것만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영어나 수학 따위를 좀 잘했다고 해서 그러지 못했던 친구들의 물질적 성공을 부당하게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불공정함일 뿐이다.
누군가가 이민 얘기를 꺼냈다. 야, 미국은 좀 그렇고 캐나다가 좋다더라. 맨날 이렇게 살면 뭐하냐, 지겹다. 더 늙기 전에
이민을 가든지 그것도 안 되면 시골 가서 농사난 짓든지 무슨 수를 내야지 매일 아침 회사 들어가기가 죽기만큼 싫다.
그러는데 한 친구가 자기는 벌써 이민 신청을 하고 인텨뷰까지 마쳤다고 한다. 우리 이야기는 그 친구를 둘러싸고 한참이나 이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여보, 태원이 있잖아."
"예, 생각나요. 당신 고등학교 친구 중에서 제일 먼저 결혼했잖아요."
"걔 이민 간대."
"왜요? 좋은 직업 놔두고?"
"방송국 피디가 보통 정신없는 게 아니잖아. 사람답게 살고 싶대. 그리고 이번에 애가 학교 들어갔는데 촌지 안 줬다고 담임이 이유 없이 벌 세워 갖고 걔 딸이 학교 안간다고 울고 난리래. 그걸 보니까 이 나라에 남은 마지막 미련까지 사라지더라고 그러드만."
그녀는 대꾸를 안한다. 부러웠나?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시금치를 다듬고 있었는데 말없이 손놀림이 거칠어졌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 정도도 안 힘들고 어떻게 살아요? 싫다고 그렇게 쉽게 떠나 버리면 거기 가서는 뭐 주인 행세 하고 살 수 있대요? 힘들어도 내 땅에서 사는 게 낫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이럴 때 마누라들은 무턱대고.
"어머, 좋겠다" 하거나 아니면 "외국 가서 살면 외롭지 않을까, 몇 년 갔다오는 것은 몰라도" 식의, 여우와 신포도 우화 같은 반응을 보일 줄 알았더니 그녀답지 않게 웬 신랄함일까? 그녀가 언제부터 이렇게 자기 생각을 갖고 산다는 걸까. 좀 뜻밖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데 소질이 있는 편이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 그 정도로 알고 있었다. 물론 연애 시절에는 잔디밭에 앉아 문학 토론도 하고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국에 대한 막연한 의분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줌마가 되기 전 일이다. 결혼 이후에는 그녀가 책을 들치는 것조차 본 적이 없는데....하긴 그녀와 길게 얘기를 나눠 본 것도 오래되긴 했다.
"그럼 당신은 내가 가자고 우겨도 이민 안 갈 거야?"
그녀는 나를 힐끗 보았다. 손으로는 시금치에 이어 파를 다듬으면서.
"난 내가 태어난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 거예요. 연애나 하면서."
"뭐, 연애?"
그래서 나는 다음 날 다시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기장을 앞뒤로 뒤지다가 드디어 '연애'라는 글자를 발견한 나는 정색을 하고 그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9월 4일
나는 연애하고 싶다. 남자에게 심각한 얼굴로 헤어지자고 한 뒤 술을 마시고 싶다. 같이 자자고 요구하는 남자에게 눈물만으로 사랑을 확인해 달라며 폼 잡고 싶다. 누구든 애태우고 싶다. 누구도 내 호기심을 사려 들지 않을뿐더러 나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는다. 나는 하찮은 존재다. 나는 소박만 맞는다. 그이는 이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일조차 별로 없다. 어떤 때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이렇게 안 쳐다보고 살 걸 남자들은 왜 그렇게들 예쁜 여자와 결혼하려고 안달인지 몰라. 나는 이제 얼굴을 밀어 버리고 그냥 남들과 구별만 가게 '마누라'라고 써 붙이고 있을게, 라고.'
어휘력이 떨어지는 탓이겠지만 소박이 뭔가, 소박이. 그녀는 여전히 내게 소중한 아내인데, 그 소박이란 말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난 그냥 좀 바쁠 뿐인데. 정보도 얻어야 하고 부탁도 해야 하고 친해 두어야 할 사람도 있고, 그래서 술도 좀 먹고 모임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고 또 가끔씩 매운탕집에서 화투도 치고 그러는 것뿐인데. 사실 영업부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연애를 하고 싶다는 그녀 말의 속뜻은 어쨌든 확실했다. 즉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예상에서 그다지 빗나가지 않은 그녀의 속마음이었다.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건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언젠가 내 생일에 그녀는 이런 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당신 생일이지만 내 생일도 돼. 왜냐하면 당신이 오늘 안태
어났으면 나는 태어날 이유가 없잖아.
설령 그녀가 진짜로 다른 남자와 새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한들 어디를 보나 살림 사는 아줌마일 뿐인 그녀에게 무슨 기회가 오겠으며 그럴 능력이나 있겠는가.....이것이 또 새 연애를 하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내가 긴장하지 않는 이유였다.
'8월 25일
허리가 아프다. 작년에 그이가 출장을 가게 돼 사흘에 걸쳐서 나 혼자 이삿짐을 푼 적이 있다. 그때 소파를 옮기다 허리가 삐끗했다. 침을 맞아서 다 나았나 했는데 피곤하다 싶으면 영락없이 도진다. 어제부터 그 허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침에 그이가 출근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일찍 들어와 쉬어야겠는데, 몸이 영 안 좋아, 라고 하기에 그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느라 좀 부산을 떨었다. 다섯 시에 시작했는데 아홉 시에야 끝났다. 민영이가 너무 보채고 민후도 오늘따라 말썽만 피웠던 것이다.
칭얼대고 보챌 때마다 참기름이며 달걀이 묻은 손을 씻고 방에 데리고 들어갔지만 좀처럼 자려고 하지 않는 민영이, 그래서 부억으로 데리고 나와 다시 칼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애가 도마 끝
을 위태롭게 잡고 있다. 멀찌감치 데려다 놓아도 다시 기어오곤 하더니 급기야는 식탁 의자를 넘어뜨려 발가락 살이 벗겨졌다. 한참을 울고, 울다가 저녁 무렵 애써 먹인 달걀과 우유 한 통을 깡그리 토해 버렸다. 그것을 겨우 치우고 나서 손을 씻고 황급히 싱크대로 돌아와 끓고 있는 기름에 새우를 집어넣으려는데 이번에는 민우가 똥을 누겠다고 한다. 화장실에 앉혀 놓고 정신없이 부엌으로 뛰어간다. 가스불을 줄여 놓았는데도 벌써 프라이팬에서 연기가 올라 오고 있다. 서둘러 프라이팬을 내려놓는데, 손에 물기가 남아 있었는지 프라이팬을 잡자마자 뜨거운 기름이 파팍, 하고 팔목으로 튀어 오른다. 금세 팔목이 부풀어 오른다. 바셀린을 바르고 오니 민영이가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밀가루 통을 하얗게 뒤집어쓰고 있다. 전화가 왔다. 늦는다는 걸 알리는 그이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끊겨 버린 뒤에도 전화기를 한참 동안이나 들고 있었다. 나는 대체 몇 시간동안 무슨 짓을 한 걸까.'
허리를 다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미련스럽게 그걸 혼자 했어? 라고만. 만약 그녀가, 그러면 어떡해요. 당신도 없는데. 했다면 나는, 사람을 좀 쓰지, 했을 거고 그러면 그녀가, 이사 비용도 빠듯한데 어떻게 사람을 불러요, 라고 항의했을 거고 나는 그때부터 듣기가 싫어져, 알았어 알았으니 당신이 다 알아서 하라구, 라고 그쯤에서 말을 돌려 버렸겠지. 그러면 그녀는 한숨을 쉰 다음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또 어떻게든 꾸려 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남편과 아내의 판에 박은 대화법이니까.
내가 나쁜 놈일까. 별로 그런 것 같진 않다.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월급을 안 갖다 주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자기 아내와 자식 귀하지 않은 놈 있겠는가. 밖에서 술을 먹고 돌아다니는 게 내 아내나 자식새끼가 싫어서 집에 안 들어가려고 버팅기는 게 아님은 모든 술꾼들이 다 안다. 그리고 그건 누구보다도 그녀가 잘 알고 있다. 그것을 그녀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하긴 살뜰하고 다감하여 지겨운 아내, 귀하고 기특해서 조바심 나는 자식들. 남들처럼은 행복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로운 가정사,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집이라는 일상에 갇혀 살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자유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자유가 이 척박한 세상에서 그라는 사람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해야 한다.'
그녀는 지금 깊이 잠들어 있다. 고단한 잠이라서 입에서 단내가 난다. 이마 위로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내려와 있다.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준다. 그녀가 문득 눈을 뜬다. 내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한동안 의아하게 쳐다보더니 다음 순간 '설마, 꿈이겠지' 하는 표정으로 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다.
'8월 29일
난 그이가 매일 일찍 들어오는 것도 싫다. 일찍 오는 것이 가정에 충실한 거라는 편견도 갖고 있지 않다. 자기 시간을 갖지 않는 인간은 고여 있는 물처럼 썩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나도 못 견딜 외로움이라니!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을 이루고 나니 이렇게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화려한 비탄이라도 있지만 이루어진 사람은 이렇게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인가'
이루어진 사랑의 남루한 일상이다.
하기는 지금 잠들어 있는 얼굴을 보니 확실히 예전에 연애하던 때의 그녀는 아니다. 얼굴은 잡티와 마른 살갖으로 덮여 있고 입내도 난다. 손을 가져다가 쓸어 본다. 어젯밤 김치를 썰었었나? 손톱밑에 고춧가루가 끼어 있다. 그녀가 나를 택한 것은 솔직히 나의 과감한 감투 덕이다. 나는 한 학기 내내 그녀만 쫓아다녔다. 그녀의 강의실 앞에서 강의가 끝나기를 기다려 점심 먹는 데까지 졸졸 따라갔다. 새벽같이 도서관 자리를 맡아 주는가 하면그녀의 리포트를 위해 남의 학교 도서관까지 뒤졌다. 미장원에서 잡지를 보며 그녀의 파마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때 내게 한심하다고 충고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며 짐짓 비장해했다. 몇 달을 그렇게 하자 그녀는 감동했다. 그러고는 내가 평생 변함없을 줄 알고 나와 결혼했다.
갑자기 그녀가 뒤척인다. 내가 일기장을 읽느라 켜 놓은 식탁의 불빛이 눈을 찌르는지 한쪽 소매로 눈을 가리는데 그 소매 끝이 허옇게 닳아 있다. 얼굴을 가까이 대보니 어깻죽지에서 아들 녀석의 젖 토한 냄새가 비릿하게 스친다. 불현듯 그녀가 안쓰럽고 소중한 것이 가슴에 품고 싶어진다. 그녀의 잠옷 아랫도리를 벗겼다. 그녀가 눈을 뜬다. 그대로 나는 그녀의 속으로 들어갔다.
어느날 나는 초저녁에 집에 들어갔다. 나를 보고 그녀가 반색을 하며 하는 첫마디가 "당신, 술도 안 먹었네?"였다. "그렇지 그럼" 나는 약간 무뚝뚝하게 대꾸하며 윗도리를 그녀에게 내 주었다.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그녀가 들떠하는 것이 이상하게 못마땅했다. 그녀는 오늘따라 반찬이 없다는 등 설마 당신이 진짜로 일찍 들어올 줄 몰랐다는 둥 말을 많이 한다. 나도 웃기는 놈이다. 왜 이렇게 생색이 나고 당당해지는 걸까. 소작인에게 겉보리 한말을 빌려 주며 연신 절을 받고 있는 지주처럼 숫제 거만한 마음까지 들고.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텔레비젼을 보고 그녀는 어쩐지 서두르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어, 네가 웬일이냐? 그래 오늘 좀 일찍 들어왔다. 야 임마, 그런 날도 있지 그럼. 가정적인 남편 아니냐, 내가."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 녀석이다. 지방대에 전임으로 있기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사는데 서울 올라오면 이렇게 가끔 내게 전화를 한다. 그녀는 불안한 얼굴로 내 쪽을 계속 흘깃거리면서 설거지를 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물소리도 작게 해 놓았다. 그러다가 내가 전화에 대고 "그래, 얼굴이라도 봐야지?" 하자 결국은 낙망한 표정이 된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일부러 괜한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나가 봐야겠는데, 라고 작게 말한다. 웃옷을 걸쳐 입고 신발을 신는 동안 그녀는 아무 말이 없다. 나는 일부러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금방 갔다 올게,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가니 바람이 시원했다.
나는 취해 들어와서 잤다. 생맥줏집에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떠들어대고 그걸로 모자라 결국 친구의 집에 가서 양주병을 따고....나는 그에게, 그래도 너는 지방에 내려가 사니 이놈의 서울 생활보다 여유가 있지 않냐고 부러워했고 그는, 요즘은 지방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 근처에 스키장이 개발되는 바람에 사람들을 다 버려 놨다.
그런 대다 어쩌다 서울 올라오면 다른 놈들은 십 년 앞서가고 나만 촌놈 다 된 것 같아 마음이 초조해진다, 대충 그런 식의 얘기를 네댓 시간 떠들어대니 목이 타서라도 술을 안 마실수가 없었다.
사흘인가 나흘 뒤 나는 새벽에 목이 말라 잠이 깼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있는데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그녀의 일기장이 눈에 띄었다. 나는 또 식탁 불을 켜고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9월 16일
나는 왜 이렇게 쉬운 여자인가.
새벽에 파고드는 그이를 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면서 사는 게 다 안쓰럽기만 하였다. 아침에 그이는 다정하다. 일찍 들어올게, 하더니 정말로 일찍 들어왔다. 나는 그만 감격해서, 저는 당신이 얼마든지 주무르고 어를 수 있는 여자여요, 하듯이 다소곳해져 갖고 그이를 맞았다. 그런데 그이는 다시 나간다. 나는 왜 이렇게 쉬운 여자인가. 그이에게 나는 왜 이렇게 하찮은가. 열한 시가 넘도록 들어오지 않는데 오늘만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화가 난다기보다 모욕감 같은
것이 들었다. 그렇다, 이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있고 없고를 떠나 먼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민후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 민영이를 들쳐 업었다.
나의 분한 마음을 알 리 없는 민영이는 등에 업히자 발을 대롱거리며 좋아한다.
포장마차를 다 뒤졌다. 우리 아파트 단지를 다 훑고 건너편 아파트 단지까지 가 봤는데 그이는 없다. 내가 민영이를 업고 포장을 비죽 들추고 들어가니 주인인 듯한 아저씨가 나를 술집에 선뜻 들어설 수 없이 머뭇거리는 아줌마라고 생각했는지 "들어오세요"라고 부추겼고, 부인인 듯한 아줌마가 남편을 쿡 찌르며 "누구 찾아 왔어"라고 했다. 손님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오줌누러 나왔던 한 중년 남자는 "아줌마, 뭘 기웃거려. 멱살을 잡고 끌어내라구" 하면서 슬쩍 다가왔다. 내 뺨으로 술 냄새가 확 끼쳤다. 등 뒤에서 민영이는 잠이 들었는지 자꾸만 묵직하게 내려않는다. 몇 번이나 포대기를 풀어 아이를 단단히 업어야 했다.
가게에서 소주 한 병을샀다. 나는 한 손으로는 자꾸 미끄러지는 아이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소주를 병째 마시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단숨에 건너편 아파트 단지까지 갔다 오고도 나는 피로한 줄 몰랐다. 술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따위 술기운이 내 꼴을 내가 보는 자괴감을 마비시켜 줄 리는 없었다.
사방이 어두웠다. 나는 어떤 집인지 모를 불 켜진 창을 올려다보며 까닭 없이 그 불빛에 대고 그리움을 느꼈다.'
갑자기 명치께가 아팠다. 가슴을 무엇인가 둔중한 것으로 얻어맞은 듯이 한동안 숨쉬기가 거북했다. 이윽고 긴 한숨을 내쉼으로써 호흡은 조절했지만 이번에는 머릿속이 한없이 복잡해졌다. 언제부터 그녀가 술을 마셨나. 그녀는 술을 못마신다. 술도 못 마시면서 연애 시절 소줏집으로만 끌고 다니는 내게 불만을 말한 적은 없다. 그런 그녀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일기장을 거슬러 넘겨 가며 또 술 이야기가 없나 찾아보았다. 가슴이 아픈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그때부터는 내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4월 7일
소주를 한 잔 따랐다. 첫 모금을 혀에 대니 좀 세다. 가슴이 지르르하다. 하지만 밥이나 빵이나 과일이 아닌, 술을 마신다는 것이 즐겁다. 이것도 손쉬운 방법이나마 일상의 탈피니까, 머릿속에서 그이의 생가도 차츰 아련해진다. 술이 나더러 여편네 아니라고 한다. 대신 혼자 술 마시는 외로운 여자 하라고 한다.
5월 27일
아이들은 낮잠을 자고 나는 목욕을 한다. 며칠 만인지 모른다. 피곤해서 내 몸을 돌볼 여유가 없다. 사실 내 옷은 빨기도 싫고 나 먹을 반찬은 만들기 싫다. 내것은 뭐든지 대충이다. 꼭 해야만 하는 가족의 시중에 밀려 나 자신의 시중은 뒷전인 것이다. 샤워를 한 다음 세면대 앞에 한참 동안 서서 거울 속의 내 알몸을 본다. 거울에 바싹 붙어 서 있으려니 젖꼭지가 세면대에 닿는다. 차갑고 단단한 도기에 닿는 젖꼭지의 감촉이 싫지 않다. 이런 섬세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여자 된 즐거움인 듯도 하다. 하지만 욕조를 닦기 시작하면서 그런 기분은 깡그리 사라진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서 욕조 안의 기름때를 박박 문지르고 있는 나. 조금 전까지 이 몸이 어떻게 여자의 몸으로 의식되었던가? 지금 다시 거울에 비친 나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 고개를 욕조에 깊이 처박고는 엉덩이를 들썩대며 씩씩하게 욕조를 닦고 있다.
그때 벨이 울린다. 외판원인가 보다. 대충 누르다 갈 줄 알았는 데 끈질기다. 이러다가 아이들이 깰 것만 같다. 서둘러 옷을 꽤고 문을 여니 역시 외판원.
"사모님, 방송 보셨습니까?"
나는 그의 얼굴이 잘 생겼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 프로 안 보신 모양이죠? 우리나라 문화 수준이 낮다고 좀 높여 보자구요."
책인 모양이군, 팔려는 것이, 수준 어쩌구 하면서 나처럼 살림만 하고 살지만 무식해지기는 싫은 아줌마들을 주눅 들여 책을 팔려는 얄팍한 상술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와 얘기하는 게 괜찮아서 귀담아 듣는 척한다.
계속 얼굴을 보면서.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까만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빙긋 웃는 안성기를 보고서 갑자기 마음이 찌르르해지던 그때 기분 같기도 하다.
그가 돌아간 뒤 나는 다시 목욕탕으로 돌아와 욕조를 닦는다. 욕조와 벽 사이의 실리콘에 곰팡이가 잘 닦이지 않는다. 가계부의 '살림 힌트'란에서 그것을 지우는 방법을 본 것 같아 가계부를 들춰 보는데 갈피에 끼워 두었던 고지서가 한꺼번에 떨어진다. 아이들이 깨면 데리고 은행에 갈 생각을 하며 나는 서둘어 쌀을 씻었다.'
"여보, 새벽에 불 켜고 뭐 해요?"
열린 방문 안에서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그녀의 목소리가 다정한 것도 귀에 거슬린다. 일기장을 제자리에 두고 방으로 돌아오니 그녀는 밥을 지으러 나가려는지 윗도리를 걸치는데 스웨터 가슴께에 눌린 밥풀 몇 개가 허옇게 말라붙어 있다. 칠칠찮기는. 나는 일기장 속의 그녀에게 화가 나 있었다.하지만 그게 아닌지도 모른다. 꼭 그녀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어쩐지 산다는 게 다 울적했다.
다음 날 술자리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요새는 한강 내려다보이는 고급 아파트들 인기가 떨어진다고 하데?"
"글쎄 말야. 신문 보니까 아줌마들이 강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며 삶을 비관하고 자살 충동까지 생겨서 그렇다며? 그래서 집을 복덕방에 내다 버린다고 말야."
"팔자 좋은 얘기지. 죽을 시간도 없는데 인생 비관할 시간이 어디 있어?"
"남편들은 이 눈치 저 눈치 봐 가며 뼈 빠지게 벌어다 주면 마누라들은 한가하게 인생 타령이나 하고, 수준들 높다니까. 우리 마누라가 뭐라는 줄 알아. 자기도 자유가 필요하다나? 집안일이 지겹고 힘들다는 거야 나도 알지. 하지만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더러운 꼴 참아 가며 죽으나 사나 이놈의 회사에 모가지 붙들여 있는 것에 비하면 자기야 근무 여건이 좋은 편이지, 안 그래?"
"그래서, 그렇게 말했어?"
"맞아 죽게?"
화제는 자연스럽게 간 큰 남자 시리즈로 이어졌다. 누군가가 여자들은 먹는 일에 자기 돈의 절반을 쓰고 다시 빼는 일에 나머지 반을 쓴다는 대담으로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자글자글 익어가는 돼지갈비를 뒤집으며 소주맛 좋다, 하면서 밤을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기분이 끝내 유쾌해지지가 않았다.
집에 들어가니 그녀도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다. 문을 따 주고는 등 뒤애 가만히 서 있는 폼이 발언권을 얻겠다고 단단히 작정한 눈치다. 왜 그래? 내 목소리는 그지없이 당당한 나머지 짜증까지
섞여 있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마셔야만 해요? 그래, 매일 마셔야 해, 술 안 마시고는 사회생활이 안 돼요? 그래, 술 안 마시고는 사회생활이 안돼. 간암 환자 빼고 그런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내가 야유조로 대꾸하자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잠깐 침묵이 흐른다. 나는 어쩐지 좀 미안해지려고 한다. 그런 내 마음을 붙들어 매 놓기 위해서라도 내 표정은 더욱 유들유들해질 수밖에 없다. 그녀는 한참을 그냥 그대로 서 있다. 나를 똑바로 쏘아보며. 그러다가 얼핏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데 눈에 물기가 비친다. 내 귀에 그녀의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인생을 좀 진지하게 살 수 없어요? 그런 식으로 인생을 다 보내 버릴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갑자기 귀가 다 먹먹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 그녀는 말이 별로 없다. 밤늦게 들어오는 나를 맞아들이는 태도도 전처럼 다정하지 않고 아침 출근 때도 현관까지 따라 나오지 않는다. 좀 허전하 마음이 드는 것이 그제서야 그동안 그녀가 내게 꽤 살가웠구나 싶어진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일상이 불편해지거나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내 일과는 다를 바가 없다. 집에서 밥도 잘 먹지 않고 얘기를 나눌 시간도 별로 없는 나로서는 설령 그녀에게 무언가 강한 의사 표현을 해야 할 때가 오더라도 단식이나 침묵시위 같은 것은 애초에 성립될 수조차 없는 일인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먼저 말을 붙인 것은 '사우(社友)아내를 위한 교양 강좌'에 마누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라고 차장이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강좌 제목을 보니 '남편 기 살리기'. 강사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아내 교실'을 운영해 온 여성 사회운동가와 '남편이여, 아내를 사랑하나'라는 케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여성지의 사장이었다. 나는 분명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를 이래라저래라 하는 이런 종류의 강좌보다는 차라리 꽃꽃이나 서예 강좌가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 회전이 빠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앞서 파악한다는 기획팀에서 대외 홍보와 사원의 복지 차원에서 마련한 사업을 트집 잡을 베짱은 없었다. 사우 아내를 위한 교양 강좌는 전에도 몇 번인가 열린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냥 무심코 지나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나가는 말로 라도 그녀에게 강좌가 있다는 것을 말해줄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바람이라도 쐬라'는 말로 들려주기를 기대한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게도 그녀가 도로 살가운 모습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날 아침에야 출근하면서 넌지시 운을 떼었다.
"참, 오늘 회사 강당에서 사우 아내들한테 교양 강좌를 한다던데."
"...."
"당신, 가 볼 거야? 두 시라는데."
".....무슨 내용이래요?"
"'남편 기 살리기'라나 봐."
그녀가 얼굴을 천천히 들더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눈 속이 투명하여 아무 생각도 없는 듯이 보이는 표정이다. 그렇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죄 없이 내 얼굴만 붉어질 참이다. 역시 말 안 하는 게 나을 걸 그랬다고, 나는 속으로 떨떠름해한다, 그 순간 그녀가 입을 연다.
"시간 봐서....애들 맡길 데 있으면 가 볼게요."
오랜만에 현관까지 따라 나오며 그녀는 말을 잇는다.
"민후, 감기 때문에 병원 가야 되니까, 좀 힘들 텐데....."
"누가 꼭 가야 한댔어?"
어이없게도 내 목소리는 퉁명스럽게 나왔다. 차라리 그녀가 비꼬거나 불평을 했다면 기분이 그렇게 형편없이 구겨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날도 나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왔다. 그런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그녀가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아들 녀석 감기 치다꺼리에 피곤해서 잠이 깊이 든 모양인가?
할 수 없이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과연 그녀는 일기장을 펼쳐 놓은 채 그대로 엎드려 잠들어 있다. 워낙 고단했는지 오늘은 날짜만 써 놓고 빈칸이었다. 그런데 펼쳐진 일기장의 오른쪽 페이지가 갑자기 내 눈에 확 들어온다.
'때때로 나는 똥을 보고 놀란다. 저 흉측한 것이 내 몸에서 나왔다고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똥은 엄연하다. 우리 관계는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한참을 보니 신기하게도 저것이 더러운 똥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이제 막 궂고 수고로운 일을 마친 가족 같기도 하다. 나는 똥을 자세히 본다 내 똥을 자세히 보는 나를 거울로 보니 참 정답다.'
아들 녀석이 칭얼거린다. 아까 오 분 넘게 벨을 눌러도 끄떡 않던 그녀의 잠은 아이의 뒤척이는 소리에 민감하게 깨어난다. 그녀는 황급히 아이 곁으로 다가가더니 아이 이마 위의 물수건을 내려놓고 아이를 품에 끌어안는다. 그러고는 졸린 눈을 감은 채 아이의 뺨에 자기 뺨을 대고 앞뒤로 몸을 흔들며 등을 토닥거린다. 그러나 잠이 덜 깬 탓에 등을 토닥이다가 뒤통수를 토닥이다가, 손놀림이 일정하지 않다. 그녀의 앉은 엉덩이께에는 약봉지며 체온계며 대야, 수건 같은 것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지금 아이를 안은 그녀의 동작이 몇시간 동안이나 반복된 것임을 말해 준다. 아이를 안은 채 눈을 꼭 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다. 뒤로 묶은 머리가 머리핀 사이로 잔뜩 빠져나와 어수선하다. 나는 손에 펴 들고 있던 그녀의 일기장을 가만히 덮어준다.
살아가는 것은, 진지한 일이다. 비록 모양틀 안에서 똑같은 얼음으로 얼려진다 해도 그렇다, 살아가는 것은 엄숙한 일이다.
타인에게 말 걸기, 문학동네 1996년
은희경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숙명여대 국문학과 졸업.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이중주가, 같은 해에 장편 새의 선물이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대표작으로 새의
선물,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비밀과 거짓말,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소녕을 위로해줘 등이 있다.
동서문학상1997년. 이상문학상1998년. 한국소설문학상2000년,
이산문학상2006년. 동인문학상 2007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