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3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4

Hopefortomorrow 2015. 4. 7. 16:26

돌런갱어 시리즈-2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4

 

캐리의 죽음은 그녀를 사랑했던 우리 모두의 삶에 구멍을 냈다. 이제  그녀가 아끼던 작은 사기 인형들은 내가  소중히 간직해둘 내 물건이 되었다. 크리스는 나와 가까이 있겠다는 이유만으로 버지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재개했다.

가지마 캐서린. 내가 산으로 둘러싸인 내 집으로 돌아가 무용 선생으로서 내 삶을 되찾겠다고 말했을 때 폴이 애원했다. 나를 다시 홀로 두고 떠나지마! 조리에게는 아버지

 

가 필요하고 나는 네가 필요해! 내가 말했다. 나중에요. 언젠가 당신에게 올 거고, 우리는 결혼을 할 거예요.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요.

버지니아주로 돌아왔다. 나는 곧 일상으로, 폭스워스 사람들이 사는 저택과 멀지 않은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본격적으로 계획에 착수했다. 캐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제 조리가 문제였다. 조리는 무용학교에 싫증이 났고, 또래 아이들과 놀고 싶어했다. 나는 조리를 특별 유치원에 등록 시켰고, 집안일을 하고 내가 없을 때 조리와 함께 있어줄

 

가정부를 고용했다.

이제까지 나를 피해다니는 것 같았던 바트 윈슬로가 힐런데일에 변호사 사무실을 다시 개업하고, 그린글레나에 있는 첫 사무실은 하급 이사에게 맡겼다는 소식이 지역 신문에 자세하고 커다랗게 실렸다. 사무실이 두 곳. 돈으로 사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 그에게 직접적으로 대담하게 다가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우연한 만남'을 계획했다.

 

가정부 엠마에게 조리를 보살피게하고 폭스워스 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숲으로 차를 몰았다. 바트 윈슬로는 그의 모든 삶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일종의 유명인사였던 덕분에, 그가 아침을 먹기 전에 몇 길로미터 조깅을 하는 습관이 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을 수 있었다. 과연 가까운  미래에 곧 닥칠 일을 견디려면 그에게는 강인한 심장

이 필요할 것이다. 나도 며칠간 흙길을 별 소득없이 왕복했다. 길은 꼬불꼬불하고 죽어서 마르고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들로 어지러이 차 있었다. 9월이었고, 캐리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였다. 나무가 타면서 내는 매캐한 냄새와 나무 패는 소리를 들으면서 슬픈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캐리가 즐기고 있어야 할 소리와 냄새, 캐리, 그들은 죄값을 치를거야, 내가 그렇게 할 것이야! 바트 윈슬로, 사실 그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이용해야만 했다. 아니,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죄라면 엄마 코린과 결혼을 한 것일 것이다. 그렇게 그가 있는 곳으로 오고 또 왔지만 그를 찾고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추적자고 그는 나의 오랜 과거를 모르고 내가

 

자신을 추적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만나는건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의 집 근처로 차를 몰고 가서 조깅하면서 그를 만나길 고대했지만 그럴때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의외의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어느 토요일 정오에  한 너저분한 카페에 앉아 있는데, 남자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는데 그였다. 정면으로 눈이 마

 

주쳤다. 그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뜻 밖이라는 듯이 반색을 하며 내가 앉은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가 말했다. 이거 캐서린 달이 아닙니까? 몇 달간이나 마주쳤으면 하고 바랐던 바로 그 여인이군요. 내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죠? 숨어 있었다니, 나도 당신만큼 당신을 찾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최대한 흥분한 내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억누르며 대답했다. 숨어 있지 않았어요. 그래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짙은 눈으로 몸에 찰싹 달라붙는 내 스웨터와 치마를 훑고, 초조하게 흔들거리는 내 발을 보면서 웃었다. 신문에서 당신 여동생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봤어요. 유감입니다. 어쩌다 세상을 떠났는지 여쭤보면 실례가 될까요? 병? 사고? 내 심장이 뛰었다. 어쩌다 죽었느냐고? 책 한 권으로도 쓸수 있을 얘기였다.

 

내 동생을 죽인게 무엇인지 변호사님 사모님에게 물어보시면 알텐데요.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엄마에게 보낸 무수한 편지, 그도 봤을 것이다. 그가 놀란 이유라면 이유다. 그가 말했다. 그녀가 당신이나 당신 여동생을 모른다는데 어떻게 이유를 압니까? 하지만 난 그녀가 부고기사를 가위로 오리는 걸  봤어요. 내가 그걸 받아쥐는데 그녀가 울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설명해 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녀는 쏜살같이 위층으로 올라가 버리더라고요. 아직까지 내 질문에 그녀는 답하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캐서린,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나는 그가 안달하는 모습을 보겠다는 생각에 햄과 토마토와 양상추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다시 한 입 베어 물고는 짜증스러울 만큼 천천히 씹으며 대답했다. 왜 그녀에게 물어보시지 않고요? 난,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해요. 그는 그렇게 내뱉더니 내가 먹는 것과 같은 걸 주문했다. 얼마전에 내가 당신 춤 연습실에 갔을 때 당신이 내 아내에게 계속 보내고 있는 협박편지를 보여주었지요. 그러면서 그가 주머니에서 내가 몇 년 전에 쓴 편지 세 통을

 

꺼냈다. 귀퉁이가 잔뜩 구겨지고 수많은 반송 도장이 찍힌 그 편지들은 결국은 다시 내 손으로 들어오려고 그녀를 따라 세계를 돌아다녔다. 지금 거의 분노로 가득차서 욕설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그와 함께. 한 번 더 묻겠소.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나는 여유있게 미소를 지었다. 내 어머니와 같은 미소로, 머리를 살짝 기울이고, 가상의 진주를 노닥거리려고 손을 팔락거렸다. 내 어머니의 모션으로. 진짜 꼭 물으셔야겠어요? 짐작이 안가요? 순진한 척 나랑 장난치자는 거요? 내 아내와 어떤 관계입니까? 그녀

 

와 닮았고, 같은 머리에 같은 눈 색깔에, 심지어 몸짓도 똑같은 게 몇가지 보입니다. 친척이오? 그래요.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겠네요.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왜 내가 당신을 만난 적이 없죠? 조카, 사촌? 그의 반응은 내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고 싶었다. 내가 가려고 일어서자 그가 막았다. 겁먹은 표정 그만 짓고 한동안 당신 마음속에 담아두었을 게임을 시작해봐요. 그가 편지들을 집어 내 눈앞에 들어보였다. 다섯 통인가 되는 편지가 나와 아내가 유럽에 있는 동안에 왔어요. 그

 

녀가 편지를 볼때마다 하얗게 질리더군. 당신이 초조하게 침을 삼키는 모습과 똑같이 그녀도 편지를 받으면 그렇게 반응했어요. 손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당신이 지금 그 구슬을 만지작거리는 것과 똑같이 말이죠. 그녀는 봉투에다 이렇게 쓰더군요. '주소불명'이라고. 어느 날 내가 우편물을 모아 오는데, 당신이 그녀에게 쓴 이 세 통의 편지를 발견했어요. 뜯어서 읽어봤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아시죠? 케서린 달. 무슨 권리로 내 아내에게 협박편지를 보내는 거죠? 난 여전히 대답은 똑같았

 

다. 그가 왔고 해답은 그가 찾아야했다. 내가 누구인지 부인에게 물어보시는 게 어때요? 그녀가 모든 답을 다 가지고 있는데 왜 굳이 나를 찾아오시는지 모르겠군요.

그가 경박하고 진한 오렌지색 플라스틱을 씌운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담뱃갑을 꺼냈다. 그의 첫 글자를 다이아몬드로 박은 담뱃갑이었다. 그가 내 어머니에게 받은 선물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하게 생긴 선물이었다. 그는 나에게 담뱃갑을 내밀며 권했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담배를 물고 역시 다이아몬드가 박힌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러는 내내 그의 짙고 좁아진 눈은 내 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제 꽤에 거미줄에 걸린 파리 모양으로, 나는 또다시 공격당하기를 기다렸다.

이 편지 전부에 당신이 절실하게 1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더군요. 그가 담배연기를 내 얼굴에 곧바로 뿜었다. 나는 기침을 하며 허공을 저었다.그가 다시 말했다.100만 달러가 왜 필요한가요? 나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냉정함과 태연함을 유지했다. 제 남편이 죽은 건 아시고. 전 그 사람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제가 갚지 못할 빚에 파

 

묻혀 허우적거리고 있었어요. 변호사님에게 약간 도움을 얻어 보험금을 받고 나서도 저는 여전히 파산해가는 중이었어요. 무용학교는 적자예요. 길러야 할 아이가 있고, 아이에게 마련해주어야 할 것들이 있어요. 그리고...당신 부인은 돈이 넘쳐나잖아요. 전 그녀가 100만 달러 정도는 떼어 줄 수 있아고 생각했어요. 그의 표정이 어이없어했다. 당신같이 똑똑한 여자가 내 아내란 사람이 스스로 친척이라고 인정하지도 않는 친척에게 한 푼이라도 내줄 만큼 인정이 많다고 짐작한다는 건가요? 변호사님, 그분한

 

테 물어보시라니까요! 물어봤소. 당신 편지를 그녀 면전에 밀어 넣고 무슨 일인지 다 알아야겠다고 다그쳤어요. 그저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야겠다고, 그녀와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 열 번도 넘게 물어봤어요. 하지만 그녀는 춤추는 모습밖에 보지 못한 발레리나라는 것 말고는 당신을 모른다고 매번 말했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당신에게서 직접 답을 얻어내야겠어요. 그의 표정은 매서웠다. 이번에는 그냥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가 보였다. 그가  내턱을 단단히 쥐었다. 자신을 똑바로 보고 대답을 하라는 듯

 

이, 대체 당신 누구요? 내 아내와 어떻게 되는 관계죠? 왜 그녀가 당신의 협박편지에 돈을 줄거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왜 당신의 편지를 받으면 그녀가 위층으로 달려 올라가서 책상 서랍이나 안전금고에 넣어두고 잠가서 보관하는 사진 앨범을 꺼내는 거죠? 내가 방에 들어갈 때마다 재빨리 감추고 잠그는 사진 앨범 말이오.

가죽커버에 금색 독수리가 박힌 파란색 앨범, 그 앨범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녀가 그 앨범을 간직하고 있다니 나로선 놀랄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어디를 가나 그 파란 앨

 

범도 그녀의 자물쇠 달린 트렁크에 담겨 따라옵니다. 당신은 그 앨범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군. 지금은 닳고 낡긴 했지만. 아내가 그 사진 앨범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장모님은 성경책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죠. 여하튼 때로는 그 앨범에 들어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있어요. 내가 추측하기로 그녀의 첫 남편을 담고 있는 사진들이죠. 나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운다는 걸 알고 싶지 않았다.  대답해요. 캐시! 당신 누구야? 그의 거듭된 추궁아닌 추궁, 나는 준비해둔 거짓말

 

을 했다. 헨리에타비치라는 여자가 있었어요. 맬컴 폭스워스가 그녀와 불륜을 저질러서 헨리에타는 아이 세 명을 낳았고 제가 그중 하나예요. 당신 부인은 내 이복 언니예요. 아...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맬컴이 헨리에타 비치와 바람을 피워 그녀에게 사생아를 안겼다, 엄청난 정보로군요. 그가 조롱하듯이 웃었다.

그 늙은 악마에게 그럴 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요. 특히 내 아내가 첫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를 겪은 사람이었던 걸 생각하면 말이지. 그는

 

그러고는 미심쩍은 눈길로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당신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죠?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싶은데. 내가 말했다. 돌아가셨어요. 아주 오래 전에요.

그가 다시 비웃었다. 좋아요. 알 만하군. 세 명의 젊은 폭스워스가 사생아가 내 아내를 협박해 돈을 좀 챙겨보겠다, 그거군. 그의 말에 바로 맞받았다. 틀렸어요! 전 그냥 저 혼자예요. 오빠나 동생은 아니에요. 전 우리에게 자격이 있기를 원할 뿐이에요! 그 편지를 썼을 때 전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고, 지금도 크게 나아진 건 없어요.

 

10만 달러 보험금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더군요. 남편이 쓴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우린 집세도 밀리고 차 할부금도 밀려 있었어요. 게다가 그의 병원비도 있었고요. 그의 장례식 비용, 그리고 아기를 낳느라 든 비용까지. 거기에 제 무용학교의 문제라면 밤새도록이라도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제가 이 학교가 수익성이 좋고 채산성이 좋다는 얘기에 어떻게 속아 넘어갔는지 하는 얘기도요. 이렇게 말해야 하는 내가 솔직히 창피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반드시. 그는 또다시 담배에 불을 댕

 

겼다. 한 모금, 깊게 연기를 빨아마셨다가 내 눈을 매섭게 쳐다보았다. 아주 솔직하게 말할게요, 캐서린 달. 우선 난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알지 못해요. 하지만 당신은 확실히 폭스워스 사람들과 닮았어요. 둘째, 내 아내에게 협박을 하려 드는 거 마땅치 않아요. 셋째, 난 그녀가 불행해 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울 정도로 불행한 건 싫단 말이오. 넷째, 난 그녀와 깊이 사랑에 빠져 있어요. 뭐 때로 그녀의 입에서 과거 얘기를 뱉어내게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허나 그녀는 과거 얘기를 절대로

 

하지 않아요. 내가 영영 듣지 못할 비밀로 가득 차 있죠. 그가 말을 멈추고 카페안을 훑어보았다.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이른 저녁식사를 하려고 들어오고 있었고, 그는 누군가 자기를 알아보고 자신의 아내, 즉 내 어머니에게 보고할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 자, 캐시, 여기서 나갑시다. 그가 일어서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재촉했다. 한잔하자고 집에 날 초대해줘도 좋아요. 그러면 앉아서 얘기 하면서 내게 모든 일을 더 상세하게 말해줄 수 있을 겁니다. 그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내게 카디건 수웨터를 소매까지

 

끼워주었다. 날씨가 아주 선선했기 때문에 필요한 건 재킷이나 코트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우리집이 어디냐고 물었고 자신이 사람들 눈에 띄어 신문에 오르내리는 건 원치 않으니 당신집에 아무도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난  가정부 엠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그의 차를 탔다. 그는 우리를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내가 자신의 옆모습을 보고 있는 걸 알았는지 그가 말했다. 나를 쳐다보고 있군요. 점수가 어떻게 되나요? 얼굴에 피가 확 몰려들며 달아올랐다. 그가 잘 생기긴 잘 생겼다.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내 인생은 잘생긴 남자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 남자는 내가 알았던 그 어떤 남자하고도 달랐다. 바람둥이 같고 위험한 느낌의 남자라는 경고 신호가 나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바였다. 난 이 남자를 내 치마폭에 넣어야만 했다. 글쎄요. 당신의 모습은 빨리 도망가서 문을 잠그라고 내게 말해주고 있군요. 내 말에 그가 짖굳게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나는 그를 유혹했고 그는 넘어왔다. 엄마의 남자를 빼았는데 있어서 8부능선까지 왔다. 마흔 살인 그가 내

 

게서 원하는건 나의 젊은 육체였고 섹스였다. 그는 수백만 달러를 물려받은 코린과 그녀의 재산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이며 사람들이 자신을 그녀의 재산을 보고 결혼했다고 믿기때문에 수치스럽다고 했다. 그의 온갖 자잘한 얘기를 듣다 보니 차는 엉뚱한 곳에 와 있었다. 그는 차를 세우고는 다시 폭스워스홀 얘기를 꺼냈다. 코린과 결혼하고 아늑한 날들이 계속될때 폭스워스 홀 천장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코리의 기타소리)를 들었어요. 하지만 정작 듣고 싶어 작정을 할 때에는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

 

았어요. 그게 다락방에서 나는 소리 같았는데 그기에 누가 있었겠어요. 쥐들이나 온갖 벌레들 뿐이었겠죠. 거긴 더군다나 여름에는 기온이 40도를 웃돌만큼 푹푹 쪘을 텐데. 근데 그녀가 어렸을적에 부모님이 벌을 줄때 다락방의 교실에 하루 종일 있게 했다는 말을 종종 했어요. 겨울에도 올려 보냈대요. 얼 것처럼 추워서 손이 퍼렇게 될 정도였다고 했어요. 내가 물었다. 다락에 올라 가 본 적이 있어요? 아뇨. 가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계단 꼭대기의 이중문이 항상 잠겨 있었어요. 게다가 다락이 뭐 다락이지.

 

별거 있었겠어요. 이제 나 자신은 폭로할 만큼 했으니, 당신 얘기를 해봐요. 어디에서 태어났고 학교는 어디에 다녔죠? 어쩌다 춤을 추게 됐고, 크리스마스 밤에 폭스워스서 열리는 무도회(캐시가 이 무도회에서 엄마 코린을 파멸시킨다)에는 왜 한 번도 참석을 안 한 거죠? 추웠는데도 땀이 나듯이 몸에 열이 났다. 왜 제가 제 얘기를 전부 해야 하죠? 당신이 당신 자신 얘기를 약간 밝혔다고 해서요? 정말 중요한 건 아무것도 말씀해 주지 않았어요. 당신도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내분과는 어떻게 만났는지, 그녀

 

가 한 번 결혼 했었다는 걸 당신은 그녀와 결혼하고 알았어요? 아니면 그 전에 알았어요? 그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꼬치꼬치 호기심 많은 물건이군요, 당신. 난 당신처럼 흥분되는 삶을 살지 않았어요.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그린글레나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죠. 남북전쟁이 내 조상들이 누리던 번영의 나날을 끝장냈지. 그때부터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그러고는 폭스워스가 숙녀분과 결혼하고, 저 남쪽에도 다시 번영이 일어난 거죠. 아내는 대대로 내려오던 우리

 

조상님들 집을 재건축하고 새로 단장을 했어요. 웬만한 집을 사는 것보다 돈을 더 들였지. 그럼 나는 그 와중에 뭘 했느냐. 나, 하버드 수석졸업생인 내가 아내와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았어요. 배운건 거의 써먹지 않고, 그녀때문에 사교계의 불나방이 되었다고나 할까. 변호사로서 내가 한 일은 법정 일 몇 번 하고,당신이 처한 곤란함을 해결하는 데 도와준 것 정도가 다군요. 그나저나 당신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수임료를 영 지불하지 않는군. 내가 소리쳤다. 나도 모르게. 200달러짜리 수표를 우편으로 보

 

냈다고요! 그게 부족하다면 지금은 드리겠지만 지금은 내드릴 돈이 없어요. 그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돈 얘기를 하는 건가? 내가 쓸 돈이 넘쳐나는데, 돈은 이제 나한테 별 의미가 없어요. 당신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다른 종류의 수임료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거죠. 그가 말하는건 내 몸이었다. 돈이 없으니 몸으로 때우라는 거였다. 하지만 난 발끈했다. 말도 안 되니까 집어치워요,바트 윈슬로! 시골 깊숙한 곳으로 나를 데려왔으니까, 이제 잔디위에서 뒹굴자는 거예요? 전직 발레리나와 사랑을 나누는 게 당신

 

필생의 야망이었어요? 난 몸을 함부로 놀리고 다니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수임료를 지불할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매력적인 점이 뭐죠? 사람들한테 더 받들리고 자기 마음대로 다 하는 돈 많은 여자의 애완견이기밖에 더해요? 원하는 건 모두 사들일 수 있는 여자, 훨씬 어린 남편까지 포함해서 말이에요! 당신 코를 둟어 코뚜레를 꿰고 당신을 끌고 다니며 앉으라고 하고 빌라고 하고 명령하지 않는 게 희한한 일이네요!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폭발직전이었다. 그는 나를 잡아먹을 듯

 

이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무자비한 힘으로 어깨를 잡더니 자신의 입술로 내 입술을 흉폭하게 덮었다. 나를 그의 몸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그는 집요하게 내 입술을 벌리며 혀를 밀어 넣었다. 나는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깨닫고서, 의지에 반해 팔이 그의 목을 슬그머니 감쌌다. 손가락이 제멋대로 나를 배신해서 그의 풍성하고 짙은 머리칼을 꼬고 있었고, 우리 둘 다 뜨거워지고 숨을 몰아쉴 때까지 키스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가 거칠게 밀치듯 내

 

몸을 떼어내는 바람에, 나는 하마터면 벤치에서 떨어질 뻔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빈정거렸다. 자, 요조숙녀님, 이제 나를 어떤 애완견으로 부를 거지? 아니면 당신은 이제 방금 늑대를 만난 빨간 모자 소녀인가? 나는 집에 데려다 달라고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기꺼이 내 육체를 소유하고 싶어했다. 그가 달려들 기미를 느끼자 나는 그의 차로 달려가서 핸드백을 열고 손톱 손질 가위를 꺼내어 그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그는 씩 웃으며 할테면 해보라는 듯이 다가 오더니 내 손

 

에서 가위를 빼았았다. 우리 집 앞에서 그가 가위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뱉었다. 캐서린,키스해준 건 시작에 불과해. 난 마지막 한 톨까지 수임료를 받아내고 말테니까. 며칠 후 조리의 재롱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크리스가 왔다. 나는 그를 반가운 마음에 포옹했고 그가 키스를 하려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입술을 피해 볼에다 입을 맞췄다. 그는 내가 바트 윈슬로에게 접근한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를  어머니에게서 빼앗아 오겠다는 계략을 꾸미느냐고도 했다. 나는 크게 놀랐지만 당황

 

하지 않았다.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빠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듯이. 그는 바트 윈슬로는 그냥 내버려두라고 화를 냈다. 그가 나때문에 어머니를 버릴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라고도 했다. 그는 우리집에 올때마다 캐리의 방에서 잤다. 그의 눈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쫒았지만, 우리는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진이 다 빠지고 상실감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폴에게 돌아가 그와 함께 안정된 삶을 살 테고, 조리에게도 필요한 아버지가 생길 것이라

 

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획이 너무 느릿느릿 진행되고 있었다. 속도를 올려야만 했다. 바트 윈슬로, 어떻게든 그에게 들러붙어야만 내 계획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그가 찾아올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아침마다 조깅한다는 바트 윈슬로, 나는 하얀색 줄이 간 밝은 파란색 조깅복을 입고서 흙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에 가본 적이 없는 오른쪽 갈림길을 택해서 빽빽한 소나무 숲을 가로질렀다. 길은 희미했고 끝도 없이 구불구불했다. 그래서 나는 발이 걸려 넘어질까 봐 나무

 

뿌리가 튀어나와 있지는 않은지 계속 주의해서 발밑을 봐야 했다. 소나무들 틈에서 자라는 산의 나무들은 완연한 가을색에 젖어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직감했다. 누구인지, 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낙옆들이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빨리, 더빨리 달렸다. 바람이 내 머리를 풀어 헤치며 길게 물결치게 만들었다. 캐시! 기다려! 너무 빨리 달리잖아!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윈슬로 씨. 하지만 여자도 따라잡지 못

 

하는 남자는 남자라고도 할 수 없죠! 그는 내 말에 열받았는지 나를 따라잡으려 애썼다. 나는 정말이지 전력을 다해야 했다. 나는 날 듯이 달렸고 내 긴 머리가 나부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툭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내 더러워진 운동화의 발부리가 걸리는 바람에 얼굴부터 정통으로 바닥에 닿으며 고꾸라지 듯 넘어졌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춤출때 부터 내 무릎은 언제나 나를 괴롭혔다. 그가 다가왔다. 그의 표정에 걱정과 염려가 서려있었다. 다쳤어? 아주 창백해보여. 괜찮아? 무릎을 다쳤어? 내가 차갑게 대꾸

 

했다. 집에 가서 당신 아내분의 제 기능을 다하는 무릎이나 보세요. 그가 어이없어했다. 나를 왜 그렇게 혐오스업다는 듯이 대하지? 너를 다시 봐서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넌 잡아먹을 듯이 나오니 기도차고 코도 찬다. 바트 윈슬로씨, 난 통증을 느끼면 항상 사람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해요. 당신은 안 그런가 봐요? 나야 아플 때 다정하고 겸손하지. 자주 아프지는 않지만 그래야 관심을 더 받거든. 전 관심받고 싶지 않으니 즐겁게 갈 길 가시고 전 제 갈 길 가게 하셨으면 해요. 그가 실망한 기색으로 말했다. 난 친

 

하게 지내고 싶은데 넌 싸우고 싶어 하는구나. 나한테 좀 잘해줘.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내가 얼마나 더 잘생겼는지, 나와 마주쳐서 얼마나 신이 나는지 말해줘. 내가 비꼬았다. 어련하시겠어요.캐시, 내 아내는 아직도 그 미용 스파에 있고, 나는 말할 수도 걸을 수도 없으면서 나를 볼 때마다 노려볼 힘은 용케 남아 있는 늙은 여인(할머니)곁에서 기나긴 몇 달을 완전히 나 혼자서 외롭고 죽기 일보 직전으로 지루하게 보내고 있어. 불가에 그냥 앉아서 이 동네 누군가가 살인이라도 저질러서 흥미로운 사건이나

 

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니까. 기분 전환용으로 말이지. 변호사란 사람이 억눌려 있다가 갑자기 터뜨릴 감정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저 행복하고 정상적인 사람들만 우글거리는 데서 산다는 건 정말이지 빌어먹게 답답한 일이야. 바트 윈슬로씨, 따분하신가 본데 당신 앞에 공격적인 원망과 야비함, 복수를 일깨우며 모색하는 증오에 가득 찬 인간이 서 있으니까요. 그건 확실히 믿으셔도 돼요! 그는 내가 이렇게 말해도 나의 의도를 눈치못채는, 의구심을 조금도 품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그는 내

 

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오직, 내가 줄 수 있는 것에 굶주린 남자일 뿐이었다. 그는 관능적인 눈빛으로 내 사파이어색 조깅복을 벗겨 내리고 있었다. 왜 여기, 내 근처에 와서 살기로 한 거지? 그의 말에 나는 웃었다. 원래 그렇게 말했어야 그의 입장에서는 정상이었다. 내가 말했다. 참 잘나셨군요. 안 그래요? 무용학교를 인수하려고 온 거라고요. 그가 빈정거렸다. 잘도 그랬겠지...뉴욕에 있고 어딘지 몰라도 네 고향이 있을 텐데, 넌 이리로 왔어. 왜, 겨울 스포츠도 즐겨보시게? 그

 

래요, 전 온갖 종류의 스포츠를 좋아해요. 실내든 야외든, 내가 천진난만하게 대꾸했다. 그가 킬킬거렸다. 자부심에 빠진 모든 남자가, 남자가 여자와 정말로 벌이고 싶어 하는 내밀한 게임에서 이미 득점을 따냈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웃음소리라고나 할까. 나는 궁금한 걸 물었다. 정말 궁금한 것을, 말 못한다는 할머니. 그분 아예 정신이 없는 거예요? 약간만. 아내의 어머니야. 말은 하는데, 되는 대로 지껄이고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아내만 유일하게 알아듣지. 아무도 없이 혼자만 남겨두고 온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혼자 있기는. 개인 간호사가 그녀와 항상 함께 있고, 하인들도 잔뜩 있어. 그는 내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는 계속 질문을 해댔다. 그럼 그 집에는  애초부터 왜 있는 거예요? 왜 고양이가 어디 가 있을 때 즐기러 다니지 않아요? 그의 눈빛이 서늘했다. 언제까지 자길 조롱할 거냐는 듯이, 캐시, 넌 확실히 고약한 구석이 있는 여자야. 말을 해도 그렇게 얄밉게 하는지 모르겠네. 전생에 나하고 원수진 일 있나? 원 참.... 난 장모님을 조금도 좋아해본 적이 없지만, 지

 

금 그 꼴을 보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라는 게, 집 안에 있는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확인할 가족 구성원 하나 없이도 하인들이 잘 보살피고 있는지 믿지를 못하겠다는 말이야. 그녀는 기력이 없고, 도움없이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가 들어 올려주지 않으면 침대에서 나오지도 못해. 그러니까 아내가 집에 오기 전까지는 맬컴 폭스워스 여사가 학대를 당하거나 도둑질을 당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건 내 책임이란 뜻이지. 이름은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여자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분명했다. 장모님을 폭스워스 여사님이라고 부르세요? 그는 한 늙은 여인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난 그녀를 올리비아, 그렇게 불러! 그가 짧게 대답했다. 그녀의 모습이 떠 올랐다. 잿빛 돌덩이 같은 눈만 빼놓고는 움직이지 않는 그녀. 그가 해준 말로 충분했다. 이제 나는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딱 한 가지 사소한 사항만 아는 대로 착수 할 것이다. 내가 물었다. 부인분, 언제 돌아올 예정이예요? 당신이 알아서 뭐하

 

게? 저도 외로움을 타거든요, 바트, 베이비시터인 엠마가 집에 가고 나면 어린 아들밖에 남지 않아요. 그래서....어느 날 저녁에 우리 집에서 식사라도 하시면 어떨까 해서요...

오늘 밤에 갈게. 그가 지체없이 말했다. 그의 검은색 눈이 환하게 밝혀졌다.

 

정확히 7시 30분에 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익숙한 듯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의 코트를 받아서 복도 벽장에 걸었고 감미로운 음악까지 틀어놓았다. 아름다운 여자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와인과 식사를 내주는 모습에 빠지지 않은 남성은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걸 대봐요. 바트. 스카치! 얼음없이. 그는 부러 우아하고 능숙하게 꾸민 내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았다. 길게 옆선이 트인 붉은색 드레스가 벌려지며 은색 샌들부터 엉덩이까지 드러낸 내 모습에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식사를 하며 물었다. 캐시, 왜

 

촌구석에 살러 왔는지, 왜 연인으로 나를 네 가슴속에 점찍었는지 말해주지 않겠어? 나는 바로 맞받았다. 착각은 자유네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바트에게 체스 게임을 두자고 했고 그는 받아 들였지만, 내가 이러려고, 체스나 두려고 샤워하고 면도하고 가장 좋은 양복을 입고 온줄 아는 모양이군하면서 툴툴거렸다. 체스게임이 끝나자 그가 여유롭게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음악을 좀 틀라고 했다. 나는 길고 외로운 운전 길을 달래주는 용

 

도로만 팝송을 들었지, 레코드를 살 때면 으레 클래식이나 발레 음악만 집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오늘 밤은 사랑을 위해>라는 노래를 틀었다. 불은 벽난로에 있는 게 전부인 어슴푸레한 거실에서 춤을 추면서, 나는 메말라서 먼지 날리는 다락방과 크리스를 떠올렸다. 눈물이 나왔다. 왜 울어, 캐시? 그가 묻더니 내 눈물에 제 볼을 비볐다. 모르겠어요. 나는 흐느꼈다. 왜 눈물이 나는지 정말이지 알 수 없었다. 왜 몰라? 나는 알 것 같은데, 넌 흥미로움의 조합체 그 자체야. 반은 어린아이고, 반은 유혹

 

하는 여인이고, 반은 천사지. 그가 갑자기 예상치 않은 질문을 했다. 캐시, 정말로 내 아내를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했다. 아니에요. 하지만 시도는 해본 거죠. 나는 바보예요.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그러고서는 아무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화가나요. 어리고 희망과 포부로 가득 차 있던 시절에는 상처를 입을 일이 이토록 자주 생길 줄은 몰랐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혹시라도 얻게 되는 날이 오면, 내가 그걸 가진 게 맞는지 알 만큼은 계속 그 상태였으면 좋

 

겠다고 하느님에게 빌어요. 그러면 그게 사라진다고 해도 상처 입지 않을 거예요. 계속 갖고 있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은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전 꼭 도넛 같아요. 가운데가 찍혀서 없어지고, 언제나 그 사라진 조각을 찾아 헤매요. 그 짓만 되풀이되고 절대로 끝나지 않아요. 오로지 시작만 반복될 뿐이죠. 캐시, 솔직하지 않구나. 그 사라진 조각이 어디 있는지는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 텐데.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기에 있을 리 없잖아.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나긋나긋하고 유혹적이어서 계속

 

춤을 추고 있는 동안에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당신이 틀렸어요. 바트. 전 당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몰라요. 어떻게 나의 나날을 채워갈지 알 수 없어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들과 함께 있을 때 저는 살아 있어요. 하지만 조리가 잠들고 혼자 있으면, 혼자서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요. 조리에게 아빠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전 그릇된 짓만 골라서 했다는 걸 깨달아요. 제 잠재력에 열광하는 호평들이 있었죠. 하지만 개인적인 삶에서 전 오로지 실수투성이예요.

 

그러니까 제가 직업에서 거둔 성과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서 눈물을 가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내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내 눈물을 닦아주고 코를 풀라고 손수건을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길고도 긴 침묵이 찾아왔다. 우리의 눈길이 마주쳐 뒤얽히고, 심장이 점점 더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캐시, 네 문제는 더없이 단순해, 그가 말문을 열었다. 너에게 필요한 건 나 같은 사람이 다야. 너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나 같은 사람. 조리에게 아버지가 필요하다면, 그

 

렇다면 나에게는 아들이 필요해. 온갖 복잡한 문제라도 얼마나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지 알겠지? 내가 대꾸했다. 바트, 당신은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요. 나는 그를 밀쳐냈다. 너무 쉽게 그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를 내 어머니를 상대로 한 길고도 험난한 싸움 끝에 얻고 싶었다. 내가 그를 접수했다는 걸 알아야 할 그녀는 여기에 있지도 않았다. 그가 말했다. 남자들도 거짓말을 하기는 마찬가지지. 나에겐 아내가 있고, 우리는 간혹 잠자리를 함께하지. 하지만 불은 진작 꺼졌다.. 난 그녀를 모르겠어.

 

누군들 그녀를 아는 사람은 없지 싶어. 비밀덩어리이고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지. 그리고 나를 자기 안으로 들이려고 하지 않아. 너무도 오래된 일이라 이제는 들여주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아. 비밀과 눈물을 간직하고 불안에 잡아먹히면서, 뭣 때문에 밤에 잠에서 깨어 그 빌어먹을 파란 앨범을 보러 가는지! 이제 그녀는 살이 붙었어. 거기 가서 성형 수술, 주름살 제거 수술인가를 받았다고 편지를 썼더군. 돌아오면 알아볼 수나 있을까. 언제는 그녀를 알았다고 자신했는데 아니었어!  나는 이 일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조금씩 들었다. 지금은 그가 필요없었다. 나는 그에게 화를 냈다. 내 집에서 나가요! 당신 문제를 미주알고주알 들을 만큼 내가 당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난 당신을 믿지 않아요. 신뢰하지 않는다고요! 그를 밀어내려는 나의 시도에 그가 조롱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내 팔뚝을 잡고 자기 쪽으로 세차게 끌어당기는 그의 눈에서 욕망이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이제 와서 집어치우려고! 너 옷 차려입은 걸 봐. 여기에 날 오라고 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래서 내가, 유혹당할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왔단 얘기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넌 나를 유혹했어. 참 희한한 게, 실제로 널 알아왔던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널 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날 가지고 놀다가 치고 빠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네가 이기거나 내가 이기거나 둘 중의 하나야. 하지만 우리가 함께 침대로 갔다가 아침에 일어난다면 둘 다 이긴 셈이 되겠지. 그가 말을 마치자 마자 나를 들어올려 자기 어깨에다 걸쳐 멨다. 그는 내 발길질을 멈추려고 한 팔로 내 두 다리를 붙들고는 내 방으로 가서 나를 침대에 내던

 

졌다. 허둥지둥 몸부림을 쳤지만 그는 빨랐다. 무릎을 써볼 겨를도 없었다. 그가 벌어진 내 입술을 손으로 틀어막더니 강철 같은 힘으로 내 팔을 잡고 내 다리위에 올라타 앉았다. 캐시, 나의 사랑스러운 유혹자여, 그 번거로운 고생을 다해놓고 왜 그래. 넌 오래전부터 날 유혹했어. 캐시, 크리스마스 전 주까지 넌 내 거야. 그리고 내 아내가 돌아오겠지. 그럼 난 네가 필요하지 않을 테고. 나는 무서웠다. 이건 내가 원하던 방식이 아니었다. 그를 유혹하고, 불타오르게하고, 우리 어머니가 보고 내내 고통을 겪을 수

 

있도록 길고도 지난하게 나를 쫒아다니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입을 벌릴 것임을 아니까. 그런데 그는 무자비하게, 줄리언이 최악일 때보다 더 무자비하게 나를 품었다.  그는 야만스럽게 나를 내리눌렀다. 꿈틀대고 비틀면서 자리를 잡고 몸에 달라붙는 내 장밋빛 드레스를 뜯어냈다. 남은 건 이제 팬티스타킹밖에 없었고, 그는 지체없이 스타킹을 벗겨 내렸다. 거칠은 그의 입술은 내 입술을 짓이기고 있는채로, 그는 버티는 내 손을 자신의 바지 지퍼에다 가져

 

다 대고 내 손가락 마디가 금이 가도록 움켜쥐었다. 지퍼를 내리지 않으면 손가락이 부러질 판이었다. 자기 아래 벌거벗고 누워 있는 나를 붙들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능란하게 옷을 벗을 수 있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그가 양말만 빼고 옷을 다 벗었을 때도 나는 버둥거리고 비틀고 들이받으며, 그가 키스를 하고 애무하고 내 몸 구석구석을 훑는 동안에 할퀴고 깨물려고 애를 썼다. 소리를 지를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숨을 몰아쉬고 그를 위로 밀어 올리느라 힘에 부쳤다. 하지만 그는 내 행동을 초대한다는 의

 

미로, 환영하며 팔을 벌리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가 들어왔고, 자기 혼자 너무 빨리 욕구를 채우고는 몸을 빼냈다. 나는 아무런 만족도 느낄 수 없었다.

나가요! 내가 소리쳤다. 경찰 부를 거예요! 폭행과 강간으로 감옥에 처넣겠어요! 하지만 그는 경멸을 담은 웃음을 지으며 내 턱 아래를 장난스럽게 콕콕 찌르더니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이거 겁나서 살겠나. 기분이 좋지 않지? 네가 계획한 대로 풀리지가 않으니 말이야. 하지만 걱정하지마. 내일 밤 다시 올 거고, 네가 나를 충분히 기쁘게 해주

 

면 또 모르지. 나도 시간을 들여 널 기쁘게 해줄 생각이 들는지. 나는 경멸의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다신 오지 말아요. 이 집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감히 했다가는 죽은 목숨인 줄 알아요!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 짐승이야! 그가 비웃었다. 아내도 종종 같은 말을 하더군. 그는 등이라도 돌리고 바지 지퍼를 올릴 만한 체면도 차리지 않고 내 눈앞에서 뻔뻔하게 지퍼를 올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하지만 아주 똑같이, 너랑 똑같이 좋아한단 말이지. 비프 웰링턴, 내일 밤에는 그 요리를 준비

 

해주면 좋겠군. 드레싱 얹은 셀러드에다가 디저트로는 초콜릿 무스가 좋겠어.  내일 밤 같은 시간에 오지. 내일 밤은 여기서 묵을 거야. 네가 제대로만 대접을 해준다면. 그는 현관문을 쾅 닫으며 떠났다. 지옥에나 가라! 나는 울기 시작했다. 비프 웰링턴 좋아하네. 비소를 곁들여서 주지.

조리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서른 여섯 송이의 장미가 도착했다. 줄기가 긴 품종으로, 플로리스트가 꾸민 꽃다발이었다. 작고 하얀 카드와 함께.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그

 

대에게 보내오. 그대가 내 심장을 가져갈 매일 밤 한 송이식으로'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도대체 이 성냥갑만 한 집에다가 서른여섯 송이의 꽃을 가지고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어린이들 병실에 보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병원은 아주 멀었다. 조리는 폴 삼촌이 보낸 장미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꽃은 바트가 보낸 것이었다. 낮에 우체국에 우표사러 갔었는데 그도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 차까지 따라와 장미가 마음에 들었느냐고 묻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내가 쏘아붙였다. 당

 

신 같은 사람에게 걸맞는 장미는 아니더군요. 그러고는 고개를 빳빳히 들고 차에 올라타서 그의 면전에 대고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나는 미소 한 방울 짓지 않고 그가 멍하니 바라보게 내버려두었다. 그의 표정은 꽤 무참해 보였다. 근데 저녁에 또 상자에 장미가 배달되어왔다. 검은색 벨벳 천 위에 다이아몬드가 많이 박힌 장미였다. 역시 카드가 들어있었다. '이런 종류의 장미가 네 입맛에는 더 맞겠지?'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의 부인이 가진 돈으로 사기에는 별것도 아닌 이 물건을 치워버렸다. 그날 밤 7시

 

반에 그는 공언했던 대로 나타나는 뻔뻔스러움을 여전히 선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순순히 집 안으로 들이고, 칵테일이니 무슨 근사한 절차니 하는 법석을 피우지도 않고 말없이 주방으로 인도했다. 식탁은 전날 밤보다 더 공을 들여 꾸몄다. 몇몇 상자를 꺼내서 푼 레이스 달린  식탁용 깔개와 은 식기들로 차려져 있었다.

아직까지 우리 둘 다 한 마디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용서를 구하는 그의 장미들을 모두 모아서 그 가까이에 있는 상자에다 쳐박아둔 터였다. 그의 빈 접시에는 낮에 그

 

가 보냈던 다이아몬드 장미 브로치가 담긴 벨벳 보석함을 놓아 두었다. 나는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석함을 옆으로 밀어놓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서 접힌 쪽지를 꺼내 내게 건넸다. 그가 육필로 적은 편지였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유로 너를 사랑해. 심지어 너를 알기 전부터 너를 사랑했어. 그러니까. 나의 사랑은 이유도 계획도 없지. 가라고 하면 갈게. 하지만 먼저 알아둬. 네가 내게서 등을 돌린다면, 나는 우리 것이 되었어야 할 사랑을 평생 기억할 테고, 죽어서도 널 사랑

 

할 거야' 나는 쪽지를 읽고 그가 집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시적이네요. 어딘가 낯설면서도 들어본 듯한 느낌도 들고요. 그가 대답했다. 바로 몇 분 전에 적은 건데 어떻게 들어본 것처럼 들릴 수 있을까? 내가 변호사라고 너에게 경고했지. 난 시인이 아니야. 그러니까 글이 좀 이상한 건 설명이 되지. 학교 다닐 적에 시는 내가 가장 잘하는 과목이 아니었거든. 분명히 그래 보이네요.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1806~1861)영국의 여류 시인)은 달콤하기

 

는 하지만, 당신 타입은 아니니까요. (쪽지의 내용은 결국 시를 베낀 것이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거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기분 나빠 하는 표정에 나는 너무도 만족해하며 고소해했다. 그가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와 제가 오늘 저녁에 먹은 식사와 정확히 똑같은 거예요. 우리한테는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으니까, 당신한테도 만족스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남겨뒀죠. 그거 전부 당신 혼자 차지예요. 맘껏 드세요. 내 말에 그가 이글이글 불타오로

 

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콩만큼이나 차가워져 있을 핫도그를 무지막지하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는  그 차가운 핫도그를 다 먹어치우고 우유 한 잔을 마셨다. 그에게 디저트로 동물 모양 크래커를 내밀었다. 처음에 그는 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과자 상자를 바라보았고, 그러고는 상자를 뜯어서 사자를 꺼내 사자의 머리를 한 입 깨물었다. 동물 크래커를 하나하나 다 먹고 부스러기까지 해치운 다음에야 그는 내

 

게 못마땅하다는 눈길을 보냈다. 그 눈길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나는 내 몸이 개미만 하게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가 말했다. 너도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그 지긋지긋한 자유주의 여성인가 보군! 틀렸어요. 전 어떤 남자들하고만 자유주의 여자가 돼요. 제가 숭배하고 아끼고 노예처럼 시중을 들어줄 수 있는 남자들도 있죠. 캐시! 너 때문에 내가 그렇게 행동하게 된 거야! 그가 강하게 이의를 피력했다. 내가 일이 그렇게 되라고 일부러 계획했다고 생각해? 난 동

 

등한 토대에서 우리 관계를 만들어가기를 원했어. 근데 넌 왜 그런 옷을 입었던 거지? 그게 남성 우월주의 자들이 좋아하는 종류의 옷이니까요! 난, 남성 우월주의자가 아니야. 그리고 그런 종류의 드레스는 아주 싫어한다고! 제가 지금 입고 있는 게 더 마음에 들어요? 나는 몸을 더 곧게 펴고 앉아 보풀이 일어난 스웨터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스웨터에다 색 바랜 청바지를 입고, 발에는 더러운 운동화를 끼워 신었으며, 머리카락은 얼굴 피부가 떨어져 나가라 뒤로 잡아당겨서 세로 매듭으로 질끈 동여맸다.

 

일부러 긴 머리카락 몇 올은 빼서 얼굴로 흘러내리게, 한 마디로 단정치 못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연출했던 것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쫙 빼입고 왔다. 열 받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가 아주 못마땅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적어도 정직한 모습이기는 하군! 그만하면 내가 널 쫒아다녀주게 할 만하네. 준비가 된 모습이라고. 내가 한 가지 경멸하는 게 있다면, 네가 어젯밤에 그랬던 것처럼 세게 나오는 여자들이야. 나 스스로 발견하는

 

스릴을 앗아 가면서 모든 걸 다 보여주는 그런 별 볼 일 없는 드레스보다는 더 나은 걸 기대했단 말이지. 그가 이맛살을 찡그리며 웅얼거렸다. 그 빌어먹을 매춘부 같은 빨간 드레스에서 청바지로 변신하다니. 24시간이 지나는 사이에 10대 소녀가 됐군! 내가 발끈했다. 빨간색 아니에요! 장미 색깔이에요! 게다가 바트, 당신같이 강한 남자는 언제나 약하고 수동적이고 멍청한 여자들을 좋아하죠.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당신 자신도 온순한 양과 같고, 공격적인 여자들을 두려워하니까요.

 

뭐라고? 난 약하다거나 온순한 거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 너의 그 잘난 목적에 이용되는 게 아니라 한 남자로서 남자다움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게다가 공격적인 여자들을 경멸하는 것만큼이나 수동적인 여자들도 경멸해. 난 다만 사냥꾼이 날 덫으로 질질 끌고 가면서 나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기분이 싫을 뿐이야. 너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해? 너에게 장미와 다이아몬드, 베껴 쓴 시를 주었는데도, 넌 머리조차 빗지 않고 코에서 기름기를 닦아낼 생각도 안 하

 

는군. 흥! 지금 당신은 꾸미지 않은 제 모습을 보고 있는 거예요. 꾸미지 않은 모습을. 이제 봤으니까 가셔도 돼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린 맞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부인에게 돌아가세요. 그녀는 당신을 가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원하지 않으니까. 그가 순순히 내 말을 따르겠다는 듯 재빨리 오더니, 갑자기 나를 품에 끌어안고 발로 차서 문을 닫았다. 널 사랑해. 왜 사랑하는지는 하느님만 아실 일이지. 하지만 언제나 널 사랑해온 듯한 기분이 든다

 

고.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그가 내 머리에서 핀들을 뽑고 머리카락을 풀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흩뜨려서 부풀렸고, 머리가 저절로 제 모양을 찾았다. 그가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숙이는데, 살짝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당신의 꾸미지 않은 입술에 키스를 해도 되겠습니까? 정말 아름다운 입술이야. 그가 내 승낙을 기다리지도 않고 내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아, 깃털 같은 입맞춤에 전율의 감각이 몰려왔다. 이렇게 하는 게 제대로 된 출발이라는 걸 왜

 

모든 남자가 알지 못할까? 살아 있는 채로 잡아먹힐 듯 다루어지고, 혀가 밀고 들어와 질식당하기를 원할 여자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아니었다. 나는 바이올린처럼 연주되고 싶었다. 피아니시모로 여리게, 라르고로 느리게,  레가토처럼 끊이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져 켜지고, 그러고는 크레셴도로 최고조에 도달하고 싶었다. 오로지 나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황홀한 절정을 향해 감미롭게 가고 싶었다. 그것은 남자가 분위기에 딱 맞는 말을 하고, 손이 희롱에 들어가기 앞서서 딱 맞는 그런 키스를

 

할 때만 일어나는 일이다. 그가 지난밤에는 그런 기술을 조금밖에 구사하지 않았다면, 오늘 밤의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기술을 총동원했다. 이번에 그는 나를 별까지 데려다주었고, 그곳에서 우리 둘 다 폭발하고, 폭발이 끝나고  나서도 꼭 끌어안고 있다가 똑같은 일을 한 번 더 반복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을 더 했다. 그는 털북숭이였다. 줄리언은 배꼽까지 올라오는 가는 이엉 같은 털을 빼놓고는 털이 없었다. 줄리언은 내가 긴 향수 목욕 끝에 발레복을 입고 나타나 발에 장미 향을 풍겨도 발에는 절대로 키스를

 

하지 않았다. 바트는 위로 올라오기 전에 발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할머니가 우리를 지켜보면서 지옥으로 보낼 듯한 차가운 잿빛 눈을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마음의 스위치를 내려 그녀를 꺼버리고, 내 감각과 이제 나를 연인처럼 대해주고 있는 이 남자에게 몸을 내맡겼다.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바트는 자기 아내의 대리물로 나를 이용하고 있었고 그녀가 돌아오면 나는 다시는 그를 못 볼 것이었다. 잠이 들고 꿈을 꾸었다. 내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주

 

었던 은색 음악상자 안에 줄리언이 들어 있었다. 그가 빙글빙글 돌면서 얼굴을 되풀이해서 내게 향했고, 흑단 같은 눈에는 힐난이 담겨 있었다. 그에게 콧수염이 자라더니 폴이 되었다. 그는 그저 슬퍼 보이기만 했다. 나는 쏜살같이 달려가 음악상자 안의 죽음에서 그를 풀어주려고 했지만, 상자는 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안에 크리스가 누워있었다.(모두가 죽는 다는 결말을 예고한 것임) 눈은 감겨 있고 손은 가슴위에 포개져 있었다. 죽었다. 그가 죽었다. 크리스! 깨어나보니 바트는 떠나고 없었고 베개가 내

 

눈물로 젖어 있었다. 엄마, 왜 시작했어요, 왜?

나는 일을 나가려고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서 아침의 차가운 공기속으로 나섰다. 멀리서 희미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옛 장미의 향기와 함께 왔다. 왜 오지 않아요, 폴? 와서 왜 나 자신에게서 나를 구해주지 않아요? 왜 당신의 생각 속에서만 나를 부르는 거예요?

 

제 1부는 끝났다. 제 2부는 내가 바트의 아이를 가졌음을 내 어머니가 알게 될 때 시작된다. 역시 치를 죄가 있는 할머니도 있었다. 올려다본 산은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능글거리며 굽이쳐 올라서 있었다. 마침내 나는 산들의 부름에 응했다. 복수심에 불타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들의 울부짖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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